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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사람을 번역하다

한국어 중에서 문화적 요소를 가득 담고 있는 것은 의외로 사람입니다. 사람을 부르는 말이나 가리키는 말만큼 문화를 담고 있는 게 없을 정도입니다. 실제로 문화인류학에서 언어를 조사할 때 가장 관심 있게 보는 것은 친족명입니다. 한국어는 세계적으로 특이한 친족어 체계를 보입니다. 한국어에서 사람에 해당하는 말만 잘 번역해도 번역의 달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화적으로 볼 때 어휘가 세분화된 것은 발달하였다는 의미이고, 관심이 많다는 뜻입니다. 한국어의 특징을 이야기할 때 ‘쌀’에 관한 어휘가 많다고 소개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한국어에 쌀은 모, 벼, 쌀, 밥, 뫼 등으로 나타납니다. 뫼는 돌아가신 분께 바치는 밥입니다. 한국인은 쌀에 관심이 많고, 농경문화임을 보여줍니다.   한국어에서 친족명은 두 가지 특징을 보입니다. 하나는 위와 아래의 구별이 명확하다는 점입니다. 대표적인 단어가 형, 언니, 누나, 오빠입니다. 많은 언어, 혹은 대부분의 언어에서는 위의 형제에 대하여 이렇게 자세한 구별이 없습니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을 생각해 보시면 알 겁니다. 그런데 형제 중 아랫사람에 대한 구별은 지나치게 단순합니다. ‘동생’이면 끝입니다. 물론 여동생이나 남동생이라는 말도 가능합니다만, 동생이라고만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다른 언어 중에 이렇게 한 단어만 있는 경우도 거의 없습니다. 이런 표현의 차이는 위와 아래를 바라보는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남녀의 차이도 명확합니다. 아버지 쪽 남자 형제는 큰아버지, 작은아버지의 구별이 있는 반면 어머니 쪽 남자 형제는 그냥 위와 아래 상관없이 외삼촌이라고 합니다. 아버지의 여자 형제는 그저 고모입니다. 아버지의 누나인지 여동생인지는 상관이 없습니다. 큰아버지의 부인은 큰어머니, 작은아버지의 부인은 작은어머니라고 하는데, 외삼촌의 부인은 외숙모입니다. 어머니 오빠의 부인인데도 숙모라고 하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각 언어마다 친족어의 구별이 다르기 때문에 번역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외국인인 한국어 중에서 ‘내 동생’이라는 말이 가장 번역하기 어렵다고 하는데 일리가 있습니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내 동생이라는 말을 번역해 보세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영어로 이모, 고모, 외숙모, 큰어머니, 작은어머니를 구별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죠. 번역에서 사람을 어떤 어휘로 번역할 것인가가 고통인 경우입니다.   선생님이라는 말도 번역이 어렵습니다. 한국에 오면 선생님이 너무 많다고 불평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해가 갑니다. 모르는 사람에게도 선생님이라고 하니 말입니다. 예전에는 사장님이라고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직위를 모르면 무조건 사장님이라고 불렀던 겁니다. 요즘 가장 묘한 표현은 ‘언니’입니다. 언니라는 말은 나이 많은 사람에게 하는 말인데 나이 적은, 모르는 사람에게도 언니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외국인이 한국어 배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씨’를 높이는 말이라고 가르쳐서도 안 됩니다. ‘김 씨’라고 부르면 좋아하지 않습니다. 군이나 양은 이제 거의 쓰지 않는 말이 되었습니다. 누구를 존중에서 쓰는 말이라고도 하기 어렵습니다. 김 군이나 김 양은 오히려 무시하는 표현처럼 여겨집니다. 심지어 여사님이라는 말도 최근에는 일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되어 버렸습니다. 손님과 고객님은 어떤가요? 와이프나 서방님이라는 호칭어도 쉬운 말이 아닙니다.   한국어의 사람을 번역하는 게 정말 복잡합니다. 어쩌면 좋은 번역은 한국 사람을 잘 구별하여 표현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한국어 공부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에서 시작합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번역 큰어머니 작은아버지 한국어 배우기 한국어 공부

2024-12-01

[아름다운 우리말] 우리는 날마다 무엇을 배우는가?

 저는 수요일 저녁에 제자들과 공부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학교 근처 카페에서 하는 모임이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또는 코로나 덕분에 온라인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얼굴을 보지 못하는 모임이 되었다는 아쉬움 때문이고, 코로나 덕분이라고 말하는 것은 지방에 있는 제자나 해외에 있는 제자, 심지어 한창 힘들어하는 미얀마에 있는 제자까지 이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모임에서 그동안과는 다른 공부의 고마움을 새삼 느낍니다. 공부는 모르는 것을 배우는 것이고, 모임은 그것을 서로 나누는 것이기에 좋은 겁니다. 기쁜 것이지요. 그렇지만 내 마음에 따라 공부는 짐이 되기도 하고, 힘이 되기도 합니다. 저는 이 모임을 통해서 더 확실히 그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는 공부 모임에서 무엇을 배우는가요? 이 질문에 대한 가장 간단한 답은 물론 지식일 겁니다. 혼자서는 잘 나아가지 못하고 막혀있는 부분이 함께 하면 뚫리는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모임을 통해서 단순히 지적인 발전만을 이루는 게 아닙니다. 모임은 나를 내적으로 성장시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누구인지? 얼마나 서로를 존중하는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서로를 귀하게 여기는 것이 모임의 시작입니다. 그러고 나면 공부모임은 한 단계 더 나아가게 됩니다. 배우는 내용은 어렵고 때로 풀리지 않는 문제가 많지만, 모임 속에 있는 그 시간은 그대로 행복한 시간이 됩니다. 함께하는 사람이 고마운 시간이 됩니다. 공부가 위로가 되는 겁니다. 우리 모임은 언어와 교육에서 시작하였지만 사람을 보고 세상을 봅니다.   요즘 저는 배우는 모임을 몇 개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지금 말한 언어문화 공부모임입니다. 화요일, 목요일, 금요일 저녁에는 일본어 공부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어 수업이기는 하지만 일본어로 세상사를 이야기하는 모임입니다. 외국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나의 벽을 허물고 세상을 보는 시각을 넓히는 일입니다. 한국어와 일본어의 비교 때문에 시작한 공부이지만 금세 외국어 공부가 나를 위로합니다. 한국어를 배우는 이에게도 한국어 공부가 위로이기 바랍니다.   일요일에는 국악을 배웁니다. 장구와 민요를 주로 배웁니다. 요즘에는 북, 징, 꽹과리도 배우고 있습니다. 늦게 시작하였기에 초조함이 없습니다. 어차피 느리게 갈 것을 알기에 답답함도 없습니다. 그저 함께 어울려서 나아갈 뿐입니다. 다만 내가 어느 한 부분의 역할만이라도 잘 해내기를 소망하면서 우리 음악을 배웁니다. 그리고 선생님과 함께 국악 치유에 관한 논문도 씁니다. 내가 그랬듯이 많은 이들이 국악을 통해 치유받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한편 틈나는 대로 하는 모임은 걷고 오르기 모임입니다. 참여자가 일정한 모임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숲 걷기로 시작했던 것이 이제는 좋은 산과 계곡을 찾아 오르기도 합니다. 아내와 둘이 걷는 모임이었는데, 점점 함께하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보통은 네 명 정도가 함께 걷습니다. 처형네 부부, 제자 부부, 친구 부부 등 부부가 주로 많습니다. 아들과 조카도 함께 걷습니다. 숲에게 배우고, 길에게 배우고, 산에게 배우고, 함께 걷는 이에게 배웁니다. 흐르는 땀과 대화가 달콤합니다.   날마다 배우는 날입니다. 나를 귀하게 여기고, 서로를 귀하게 여기는 것을 배우는 시간입니다. 힘들어하는 스스로를 돕는 배움입니다. 귀하지만 때로는 가여운 나를 돕는 배움입니다. 귀한 마음으로 벗을 돕게 되는 배움입니다. 나를 대하듯이 남을 대하게 되는 시간입니다. 나를 위로하듯 그를 위로하고, 나를 칭찬하듯 그를 칭찬하고, 나를 사랑하듯 그를 사랑하는 오늘입니다. 배움을 통해서 나의 그릇이 커지기 바랍니다. 세상에 대한 이해가 커지기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도 더 살고 싶어지기 바랍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공부 모임 한국어 공부 외국어 공부

2022-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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